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인식의 전환 [안전파수꾼] |
중대재해처벌법이 이제 다음 달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사업주, 경영책임자를 안전보건환경에 관한 논의의 최일선으로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았던 만큼 지난 일년 여 동안 사업장에서는 법 시행을 앞두고 사업장 안전관리에 관한 운영체계를 점검했었다. 그리고 사업주, 경영책임자가 받게 될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바삐 움직였었다. 하지만 그러한 활동들을 되짚어보면 뭔가 중요한, 재해예방을 위해서 현실적으로 가장 먼저 강화되어야 할 영역을 놓친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글에서는 사업장의 안전관리주체와 근로자의 안전의식에 대해서 살펴본다.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의 사례이다. 지하 전기실의 전력용 변압기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중대재해가 있었다. 현장 여건상 설치할 변압기를 인력으로 밀고 가던 중에 변압기가 넘어지면서 발생한 사고였다. 전체 공정에서 난이도가 높은 변압기 교체 부분을 외부 전문팀에게 위탁한 상황에서 발생했었다. 당시 현장에는 작업감독자가 있었지만 중량물의 이동 및 설치에 관해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들과 작업도구, 절차에 대해서 사전 협의가 없었다고 했다. 2014년도 한 대형사업장의 사례를 보자. 중대재해가 연이어 발생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전경영에 3천억원을 투자하고, 안전경영부 등 9개로 분산되어 있던 안전환경조직을 통합하여 대표이사 총괄사장 직속의 안전환경실로 개편하기로 했다. 현장에서 안전사고 예방활동을 수행하는 안전전담요원도 80명에서 200여명 수준으로 대폭 늘린다고 했다. 보도된 대로 후속조치가 이루어졌다고 본다. 하지만 발표 후 8년 동안의 산업재해 지표를 보면 대대적인 투자와 조직개편의 성과에 대해서 회의를 갖게 된다. 또 다른 대형 사업장에서, 올해 중반에 이와 아주 유사한 안전보건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하였다. 의도한대로 성과가 나와서 회사의 평판이 개선되기를 바라지만 유사한 계획을 먼저 실행했던 사업장을 떠올리면 큰 기대를 갖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세 가지 사례가 갖는 근본적인 문제는 작업현장의 안전관리 주체를 지난 100 여년 동안 시행착오를 통해 입증된, 선진 안전관리체계에서 강조하는 그것과 다르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헌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할 수 있는 근로조건의 기준을 법령으로 정하도록 했는데 이로서 탄생한 근로기준법에서는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에 관한 영역을 산업안전보건법에 위임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시하는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는 사업주-안전보건관리책임자-관리감독자-근로자로 이어지는 지시체계로 설명한다. 여기서 관리감독자를 사업장의 생산과 관련되는 업무와 그 소속 직원을 직접 지휘, 감독하는 직위에 있는 사람으로서 (1)본인이 지휘, 감독하는 작업과 관련된 기계, 기구 또는 설비의 안전, 보건 점검 및 이상 유무의 확인 (2)본인에게 소속된 근로자의 작업복, 보호구 및 방호장치의 점검과 그 착용, 사용에 관한 교육과 지도 등 등을 수행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사업장의 안전관리자를 안전 보건에 관하여 사업주를 보좌하고 관리감독자와 근로자에게는 지도와 조언을 해주는 기능적인 전문가로 설명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지시체계는 대체적으로 선진 안전관리체계의 개념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업장의 규모에 따라 현실적으로 더 적합한 형태의 조직으로 산업안전을 지향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위의 사례들은 현장의 안전관리주체를 안전요원으로 보고 있었다. 대형사업장의 개선방안은 기능적인 지원부서인 안전팀을 강화하면서 현장의 안전관리를 안전전담요원이 수행하도록 했다. 생산현장의 실무를 직접 수행하지 않는 안전환경팀에게 작업장에서 수행되는 다양한 직무들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기대할 수 있을까? 현장에 배치된 안전전담요원이 작업장의 여건과 작업방법의 적절성을 작업 전에 파악하여 조치할 수는 없다. 따라서 작업 중에 목격되는 불안전한 상태와 행동에 대해서 시정하려 들 것이다. 이는 후행성 (Lagging) 안전관리가 된다. 작업현장과 근로자들이 수행하려는 직무를 잘 알고 있는 관리감독자는 작업의 계획단계에서부터 작업환경에 내재된 유해 위험한 요소를 점검하여 적절한 예방조치를 할 수 있다. 또한 근로자들이 착용하는 보호구와 작업방법의 적절성까지도 감독할 수 있다. 사고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선행성 (Leading) 안전관리가 실행되는 것이다.
사업장의 안전관리 주체는 생산현장을 관리하는 생산부서가 되어야 한다. 이는 탁월한 안전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해외기업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안전관리는 안전팀이 주도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생산현장에서 업무지시를 하는 모든 사람은 관리감독자라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관리감독자를 굳이 생산부서로 제한할 필요가 있을까? 생산과 관련되는 업무와 그 소속 직원을 직접 지휘 감독하는 사람이라고 한 만큼 사업장의 모든 업무가 상호 간 영향을 주고받는 시스템의 특성상 생산과 관련되지 않은 업무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업장에서 현장 최일선에 있는 작업조장부터 부서별 업무를 총괄적으로 지시하는 부서장까지 업무지시를 하는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 모두가 관리감독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유해 위험 방지업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사업장 관리조직의 안전보건역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앞의 사례처럼 안전보건분야에 대해 지도, 조언을 해주는 안전보건팀의 조직과 인력을 확대하기보다는 사업장의 안전관리에 관한 책임과 권한이 일차적으로 생산부서에 있음을 명확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인식하에서 관리감독자 계층이 관리감독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와 함께 제도적인 지원을 모색함이 더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산업재해 통계에서 보듯이 해마다 1000명 가까운 사고사망자가 보고되고 있다.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사업주의 안전분야에 대한 투자와 관심은 확대되고 향상되어왔는데 중대재해는 왜 줄어들지 않을까? 국회에서 산업재해에 관하여 논의를 한 적이 있었다. 한 대형 사업장의 대표가 “사고가 일어나는 유형을 보니 실질적으로 불안전한 상태의 작업자 행동에 의해 많이 일어나더라. 불안전한 상태(환경)는 안전투자를 통해 바꿀 수 있지만 (작업자의) 불안전한 행동은 개선하기 상당히 어렵다” 고 하자 여야의원들이 한 목소리로 산업재해를 근로자 탓으로 돌리려 한다고 질책했었다. 사업장의 대표로서 겪고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야기했는데 국회의원들은 일반국민의 관점에서 정서적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물론 안전공학에서는 겉보기에 원인이 사람의 실수로 보이는 사고도 심층적으로는 관리체계의 결함에서 기인할 수 있다고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에게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안전 보건에 관한 기준을 이행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특성을 논할 때 사업주 규제법이라 하는 이유이다. 이와 동시에 근로자에게도 안전 보건기준을 지키도록 하면서 사업주의 조치를 따르도록 했다. 사업주는 설비의 안전성을 확보하면서 근로자에게 안전작업절차, 보호장구를 지급하고, 근로자는 안전보건규칙 등 산업재해예방에 필요한 기준을 지키면서 사업주가 이행한 산업재해 방지조치를 따라야 하는 것이다.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에게 산업재해 방지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안전활동의 주체임을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산업안전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듀폰의 사례를 보자. 듀폰의 안전수칙에서는 모든 상해와 사고는 예방하다는 믿음을 전제로 management 가 안전성과에 관한 전적인 책임을 갖는다고 하면서 employee에게는 안전하게 일하는 것이 고용조건이라고 하고 있다. Management를 산업안전보건법의 사업주, 안전보건관리책임자(공장장)로 좁게 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현장에서 작업지시를 하는 관리감독자 직급까지 확대 해석하고 있다. 일을 지시하는 사람과 일을 수행하는 사람 모두에게 각 자의 관점에서 안전을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제법 오래 전의 일이지만 듀폰 울산공장의 안전성과에 대한 비결을 묻는 서면 인터뷰에서 필자는 10개 항목으로 구성된 듀폰안전수칙을 설명하면서 상기 3가지를 강조했었다. 그리고 직원들의 잠재의식속에는 교육받은 안전작업절차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작업하는 행위로 인해 고용계약의 해지까지 갈 수 있다는 심리적인 불안감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나름대로의 해석을 덧붙였었다.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이 나 자신과 내 가족을 위한 사랑의 실천이라는 긍정적인 해석이 훨씬 더 바람직했겠지만 함께 생활하면서 느꼈던, 직원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 기저 심리를 표현했던 것이다.
안전관리주체를 명확히 인식하고, 관리감독자로서 사명감을 갖고 선행적인 안전관리를 수행하는 조직구조를 갖추는 것이 첫 번째 접근책이라면, 지속적인 안전성과를 위한 노력의 완성은 두 번째인 근로자의 안전의식에서 이루어진다. 산업재해의 일차적인 피해자는 재해자인 근로자 자신과 그 가족이다. 수행하는 직무에 내재된 유해 위험성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자신을 보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설명하고 있는 안전한 작업장 환경, 안전한 작업방법의 기준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 자신의 안전에 무관심하고 법으로 정해 놓은 안전기준을 공부하는데 나태한 근로자는 그만큼 더 산업재해의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시이불견 (視而不見)! 위험을 보는 것이 안전의 시작이라고 했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격언을 기억하자.
2021/12월
최준환 듀폰산업안전연구원 대표 울산과학대학교 겸임교수 전기안전기술사, 산업안전지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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