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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소식/전문가 기고

[안전파수꾼] 산업안전과 노블레스 오블레주

 

[안전파수꾼] 산업안전과 노블레스 오블레주

 

지금은 문닫았지만, 한 동안 서울의 로댕갤러리에 가면 로댕이 10여년간 다듬어 1894년 완성한 역작 ‘칼레의 시민’ 상을 볼 수 있었다. 사회적 의무를 실천하는 지도계층의 도덕성노블레스 오블레주 (noblesse oblige)’를 상징하는 이 조각은 1347년의 한 역사적인 사실을 형상화한 것이다.

 

 

14세기 영국과 프랑스간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 도시 ‘칼레’가 영국군에 포위당한다. 거센 공격을 막아내지만 결국 항복을 하게 된다. 칼레 항복사절단에게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그 동안의 반항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한다. 이 도시의 대표 6명은 교수형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다. 칼레시민들은 혼란에 빠졌고 누가 처형을 받아야 하는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머뭇거리는 사이 칼레시의 최고 부자가 처형을 자청하고, 이어서 부유한 상인, 법률가, 시장 등 귀족들도 처형에 동참하기로 한다. 다음 날 처형을 받기 위해 교수대로 가는 그 6명의 뒤를 시민들은 통곡을 하며 따랐다. 영국 왕은 죽음을 자처한 시민 6명의 희생정신에 감복하여 살려준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 상은 이 6명이 겪었을 각각의 고뇌와 번민을 표현한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레주, 사회 지도계층의 리더십이 그 계층이 갖는 재력과 권력보다는 그들의 도덕성에 기인한다는 걸 보여준다. 

 

대개 생산동 건물 출입구에는 공장안에서 착용해야 하는 기본적인 보호구를 안내하는 안전표지판이 부착되어 있다. 안전모, 보안경, 안전화는 기본이며, 공장에 따라 보호복, 귀마개 등 두세 개가 더해진다. 안전운전절차서에는 작업특성에 따라 보호장구가 더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어서 해당 작업을 할 때는 거추장스럽고 또는 불편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보호구들을 꼼꼼하게 살펴가면서 착용을 할 수 있게 한다. 어쩌다 보호구 중 일부를 착용하지 않고 작업을 하는 경우에는 행동기반 안전활동 (BBS)이 작동한다. 주변의 동료가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정중하게 지적하고, 동료의 지적을 고마운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안전문화가 긍정적으로 잘 자리잡은 사업장의 풍경이다. 이런 수준의 근로자 안전의식과 조직의 안전문화가 정착되기 까지는 오랜 기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공장내 보호구 착용규정이 공식적으로 무력화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안전관리절차서 어느 구석에 몇 개의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에둘러 표현하지만 대상이 회사 내부적으로는 본사에서 들른 CEO 등 최고위급 경영자급 등이고 외부적으로는 주요 고객사에서 오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사업에 관련된 감독기관까지 포함시켜 놓기도 한다. 상대에 대한 배려로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안전보다는 업무상 효율이 우선하고 있지는 않는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외부 방문자들에게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들을 바라보는 근로자들의 안전의식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생산동 건물을 출입할 때 적용되는 안전규정을 따르지 않는 사례가 편의적으로 반복되다 보면 안전수칙상 지정된 보호구의 효용성에 의문을 갖게 될 수 있고, 이는 궁극적으로 근로자들의 안전의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외를 인정받은 방문자들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면서 안전통로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설명은 또 다른 논란거리를 만들 수 있다.  신뢰와 안전문화는 쌓기는 어렵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사업장에서 배려해 주는 ‘안전규정 예외적용’을 방문자들이 먼저 손사래를 쳐보자. 불편하더라도 생산동에 적용되는 모든 안전절차와 보호구 등을 제대로 따르고 착용하는 것이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안전통로상으로 이동을 하는 도중에 마주치는 근로자들과 당당하게 눈인사를 해보자. 내가 이 사업장의 안전문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보자. 산업안전에서도 노블레스 오블레주를 실천하는 것이다.

 

[울산제일일보 2021/11/03]


최준환

전기안전기술사 / 산업안전지도사

울산대학교 산업대학원 겸임교수 / 울산과학대학교 겸임교수

듀폰산업안전연구원 대표

Retiree - DuPont (Korea) Inc. 

            Manufacturing SHE Director (PSM, Electrical Safety) - Asia Pacific Reg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