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파수꾼]융통성·고지식함과 안전문화 |
아파트 단지 안 도로는 도로법에서 규정하는 도로가 아니라서 도로교통법이 적용되지 않는데도 겉보기에는 시가지 도로처럼 다양한 종류의 차선이 그어져 있다. 횡단보도 표지가 있는가 하면 도로 중앙선을 구간에 따라 단일 또는 이중 황색실선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인도와 맞닿은 도로변에 백색·황색실선 또는 이중 황색실선을 그어놓기도 한다.
관계 당국은 그 차선의 의미를 이해하고 준수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파트 단지 내 도로면 표지를 누군가가 그냥 그어놓은 선으로 보는 것 같다. 황색실선이 그어진 구간, 그것도 삼거리 모퉁이에 떡하니 주차해 있는 차량을 비켜 가며 운전하다 보면 직선도로 갓길의 황색실선 구간에 주차해 놓은 차량이 고맙기까지 하다. 가뜩이나 주차면 수가 부족한데도 이런저런 이유로 주차선을 침범해 주차하기도 한다.
도로표지는 운전면허시험 때 공부하는 안전운전에 관한 기본 상식이지만 이렇게 아파트 단지 내에서는 일상적으로 무시되고 있다. 이런 환경에 익숙한 사람들이 도로교통법의 적용을 받는 시가지 도로에서 제대로 지키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도로표지 ’일단정지(STOP)’ 앞에서 실제 어떻게 반응하는지 되돌아보자. ‘정지’는 말 그대로 정지로, 차량의 바퀴가 완전히 멈추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운전자 대부분은 ‘정지(STOP)’라 읽고 ‘서행(SLOW)’으로 행동한다. 물론 도로면 표지와 도로표지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일시적 편의성 때문에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는 무척이나 관대하다. 이런 행동을 상황에 따른 융통성으로 볼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란 책이 있었다. 1980년대 후반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이 책은 작고 단순해 보이지만 삶의 기본이 되는 진리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다 알고 그대로 행동했던 기본적인 것들을 성장하면서 잊고 살고 있다고 조용하게 상기시켜주는 책이었다. 성장한 우리가 도로에서 차를 운전할 때 각종 신호·표지가 가리키는 대로 지키려고 할 때, 그런 사람을 고지식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안전행동은 습관이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란 말이 있다. 불안전한 습관을 바꾸려면 불안전한 생각부터 바꾸라는 것이다. 안전한 행동은 법규 또는 절차에서 교육을 통해 습득할 수 있다. 이런 안전한 행동이 습관이 되려면 반복훈련이 필요하다. 사업장에서 비상대응훈련을 주기적으로 실행하는 이유이다.
일상적인 작업환경에서 보여주는 행동이 안전운전절차서에서 설명하는 그대로라면 안전절차가 내재화된, 잘 훈련된 근로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이 불안전한 영역에 머물러 있다면 교육·훈련의 효과를 온전히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재해의 가치를 이해하는 근로자는 자신의 판단과 행동 하나하나에 ‘안전’ 요소를 더한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주변 상황을 관찰하면서 잠재된 위험요인들을 찾으려고 한다. 생각하는 능력을 갖춘 근로자가 더 안전하게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속해 있는 조직에서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많을 때 그 조직의 안전문화 수준을 ‘독립적 단계 (independent)’라고 평가한다.
안전은 편의성을 내세워 타협하는 융통성보다는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절차, 표지 등이 의도한 대로 지키려고 하는 고지식함이 절실한 영역이다. 불편함을 감내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제대로 한다면 모두가 제대로 하는 것이다. 위험한 융통성을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 도와줄 마음으로 정중하게 일깨워준다면 ‘상호의존적 단계(interdependent)’의 안전문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기본으로 되돌아가 일상 속에서 자신을 생각하고 타인을 배려한다면 우리의 생활이 더한층 쾌적해지지 않겠는가.
작성자 : 최준환 DuPont Global Manufacturing SHE - Asia Pacific Region 듀폰코리아(주) 이사 / 전기안전기술사 / 산업안전지도사 최준환 울산과학대학교 겸임교수/ 기술사·듀폰산업안전연구원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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