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과 노동조합의 역할 [안전파수꾼] |
중대재해 처벌법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지도 벌써 반년이 훌쩍 지났다. 당장 내년부터 50인 이상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대기업은 물론 여력이 있는 중견기업까지 나서서 내부시스템을 점검하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다. 중대재해에 대한 처벌은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 모두 발생원인이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조치 또는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한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유사해 보이는 이 두 법령간 큰 차이는 처벌대상을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자”로 에두른 산업안전보건법과 달리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로 구체적으로 적시한 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당위성을 논의하는 단계에서부터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연합회 등과 같은 경제단체들이 우려를 표명한 이유이다. 매년 산재 사망사고가 1,000여건 발생하는 상황에서 해마다 1,000여명의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1년 이상의 실형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법이 사업주를 산업안전에 관한 토론의 최일선까지 이끌어 냈다고도 볼 수 있어 법 제정 효과를 시행하기 전부터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기본토대인 산업안전보건법의 안전보건 관리체제분야를 살펴보자. 회사의 규모에 따라 달리 적용될 수도 있겠지만 단순화시키면 사업주는 매년 안전보건개선계획을 수립해서 이사회의 승인을 받고, 이를 사업장의 산업재해예방계획에 반영하여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근로자대표를 포함한 다수의 근로자위원들과 함께 심의, 의결한 후에 실행하도록 되어 있다. 사업장의 안전보건계획을 사업주와 근로자가 공유하면서 근로자의 의견이 반영되는 제도적인 장치가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는 노동조합 위원장이 근로자 대표가 된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을 보도하는 기사들을 유심히 보면 일정한 유형이 보인다. 회사측에서는 사고내용을 요약하면서 관계기관과 함께 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반면 해당 사업장 노동조합은 회사측의 안전관리에 허점이 있었다 또는 회사측이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단정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상 회사측을 대표하는 위원과 같은 수의 근로자 대표 위원들이 참여하는 공식기구에서 회사측의 안전보건계획을 심의, 의결하고 실행하는데 이런 시각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노동조합이 보았던 허점, 미비점을 일상적으로 회사측과 논의해 왔다면 그 사고는 예방할 수도 있었을 텐데. 사고후에 회사측을 비난하는 접근방식이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을 도모하는 노동조합의 목적에 부합하는 걸까?
“안전 문화”란 조직문화의 일부로서 작업 환경에서 '안전'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방식이며 "안전에 관하여 근로자들이 공유하는 태도나 신념, 인식, 가치관"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노동조합은 자체적으로도 근로자 개개인의 안전의식을 높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회사측과 함께 심의, 의결했던 안전보건 프로그램이 실행되면 현장에서 그 실효성을 점검하여 의도한 결과를 성취할 수 있게 회사측과 긴밀하게 공조해야 한다. 산업현장 무재해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근로자(조합원)이기 때문이다. 회사측과 갈등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근로자를 위한 임금협상이나 단체협상은 그 성과는 내일 누릴 수 있지만 근로자의 안전은 바로 오늘, 하루하루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안전제일(Safety First)은 노동조합도 우선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덕목이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관계기관이 나서서 사업주가 안전보건조치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는지를 확인하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과 노동조합 위원장의 기여도까지 평가하여 보고서에 함께 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로자에게 사업주가 취한 안전보건조치를 따라야 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데 노동조합은 근로자(조합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한 조직이고 노동조합 위원장은 조합원들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법 체계로 정하는 산업재해예방을 위한 기준을 충실하게 이행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전 및 건강을 유지, 증진시키야 할 의무를, 근로자에게는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기준을 지켜야 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산업재해예방을 위한 사업주와 근로자의 협력적인 관계를 설정한 것이다. 이런 설정을 이해한다면, 노동조합은 근로자(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구성한 단체이므로 산업재해예방을 위해서는 사업주와 노동조합이 상호간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각 자가 해야 할 일을 충실하게 이행하여야 할 것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이다.
2021/09/02 울산제일일보 12면 안전파수꾼 게재문
울산대학교 산업대학원 겸임교수
전기안전기술사, 산업안전지도사
최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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