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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소식/전문가 기고

인간의 존엄성과 산업안전 [안전파수꾼]

 

 인간의 존엄성과 산업안전


인간의 존엄성과 산업안전

“산업안전 교육을 많이 받아왔지만 안전교육에서 헌법까지 거론하며 근로자 인권을 강조한 것은 처음입니다. 교수님의 철학이 느껴집니다.” 건설업 안전관리자 대상 강의가 끝나자 개별 질문을 하러 다가온 참석자 한 사람이 건넨 인사말이다. 과분한 치사에 어색한 미소로 화답하긴 했지만, 실은 근로자를 위한 안전규칙을 근로자가 제대로 지키지 않아 발생한 중대재해 사례를 설명하면서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헌법을 통해 강조했을 뿐이다.

헌법 제32조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지며 동시에 근로의 의무를 진다”며 근로조건의 기준을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게 법률로 정하라고 했다. 이에 따라 근로기준법이 제정되지만 제76조(안전과 보건)를 통해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에 관하여는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해서 별도의 전문화된 법률에 위임했다.

이런 배경을 가진 ‘산업안전보건법’과 최근 더해진 속칭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과 보건분야의 조직운영과 관리체계에 관한 규정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작업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환경과 작업절차 등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인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에 상세하게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이 안전보건규칙은 여러 기준의 현행화를 위해 매년 개정되고 있으며, 안전보건공단에서는 이 법령의 대중성을 높이기 위해 ‘만화로 보는’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이란 책자로 만들어 온·오프라인으로 무료 보급하고 있다. 따라서 안전한 작업환경에서 안전하게 작업하길 원하는 근로자라면 최소한 본인이 수행하려는 작업에 관해 안전보건규칙에서 정해 놓은 기준을 알고 있어야 하고 또 그대로 따라야 할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제40조를 보면 근로자는 사업주가 규정된 안전조치, 보건조치를 이행하여 확립해 놓은 작업환경과 절차 등을 ‘지켜야 한다’고 책임이 부여된 의무로 명시하고 있다. 법령이 갖는 강제성 때문에 ‘의무’라고 했지만 근로자들로서는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작업환경조건과 절차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품위를 유지하면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새 정부가 2022년 11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려 했던 작업현장의 문제점들을 제대로 짚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산업안전은 모든 주체의 참여가 중요한데도 안전관리자 등 일부 특정인의 책임으로 인식했고, 안전은 근로자에게 권리이자 의무이지만 근로자가 스스로를 보호 대상으로만 여겨 안전주체로서 현장 참여 및 실천적 행동이 부족했다고 진단했다. 그 결과 여러 대책의 하나로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는 근로자를 제재할 수 있는 절차 등을 포함한 표준안전관리규정을 만들어 안전분야 취업규칙으로 활용하도록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런 맥락은 200년 넘게 위험물질 취급 제조업을 해오면서 확립된 듀폰의 안전보건환경 원칙을 떠올리게 한다. 듀폰은 모든 사고와 상해는 예방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안전성과는 관리자의 책임이고, 직원들의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또 안전하게 일하는 것이 고용조건의 하나임을 이해하고 행동하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한다. 여기서 ‘관리자’란 생산부문에서 성과에 대한 책임과 그에 합당한 권한을 행사하는 모든 이들, 즉 사업부를 총괄하는 사장부터 생산조직 최일선에 있는 교대조장까지를 말한다. 안전절차 준수를 고용조건으로 받아들인 직원들은 안전하게 일하는 것이 자신을 위한 것임을 이해하기 때문에 절차서와 규칙들을 ‘나를 보호해 주는 제도적인 장치’로 인식하면서 회사의 다양한 안전프로그램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사업장에서 사업주(관리감독자)와 근로자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체계가 부여한 역할을 성실하게 이행한다면 우수한 안전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재해 당사자가 근로자임을 생각한다면 사업주(관리감독자)의 잘잘못을 논하기 전에 근로자가 먼저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할 수 있는 근로조건들을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으로 정리했고, 사업장에서 그것들을 작업별로 문서화한 것이 작업절차서다.

만일 주어진 작업여건이 안전보건규칙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시정조치를 요구해야 한다. 근로자 스스로가 일시적 편의 때문에 그 기준과 절차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사업주(관리감독자)나 다른 사람들에게 왜 나를 존중하지 않느냐고 항의할 수 있을까? 당장 안전작업의 필독서 ‘만화로 보는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을 구해 틈틈이 찾아보는 근로자가 되길 기대해 본다.

최준환 [울산과학대 겸임교수, 듀폰산업안전연구원(dOSRI) 대표]

최준환
DuPont Global Manufacturing SHE - Asia Pacific Region
듀폰코리아(주) 이사 / 전기안전기술사 / 산업안전지도사
최준환 울산과학대학교 겸임교수/ 기술사·듀폰산업안전연구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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