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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소식/전문가 기고

[안전파수꾼] 안전활동은 종착점이 없는 끝없는 여정

 

울산제일일보 2021년 2월 3일 (수)


   “아, 그건 언론에서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사고 이후에 필요한 조치들을 다 이행했고, 시스템적으로도 보완을 마친 상태라 이제 아무 문제없습니다.”

중대재해로 분류되는 사고가 언론에서 크게 다뤄진 탓으로 모든 조직이 한 동안 숨죽인 채 뒷수습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사고조사에서 제시된 재발 방지안들을 인력과 예산의 한계가 있었을 법한데도 빠르게 실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즉 그렇게 하지.’ 하는 역설적인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안전보건환경 프로그램 총괄 책임자의 확증 편향적인 이 말 한마디는 그 회사가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필자가 하고 있는 일의 성격상 사업장의 안전관리체계를 되돌아보거나 조직의 안전문화를 끌어올리고 싶어 하는 회사의 경영진과 안전보건환경 담당을 상대하게 된다. 제도화된 조직의 관행에서 어떤 점을 아쉬워하는지를 듣고서 나아가고 싶은 방향에 대해 조언을 해준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는 위원장, 대의원들을 만나게 된다. 좀 더 구체적인 실행안을 원할 때는 실무팀장들과 함께 작업을 하면서 즉시 시도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시하기도 한다. 따라서 앞의 사례처럼 주로 내부자들이 하는 말을 통해 상황판단을 하지만 조직의 의사결정권자, 실무팀장이 말로써 표현하지 않는 것들은 은연중의 행동을 보면서 유추하게 된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그는 안전업무에 자부심이 높은, 직원이 200명 정도 사업장의 안전팀장이었다. 만날 때마다 회사에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항상 “아무 문제없어요, 제가 맡은 이후로 계속 좋아지고 있습니다.”를 말미에 덧붙이곤 했다.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과 차이가 큰 탓에 그의 문제없다는 말이 자꾸 걸렸다. 생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현장을 둘러보면서 목격한 여러 정황들에 근거한 ‘좋아지고 있지 않음’을 대화에 올리면 공장장의 독선을 탓하거나 현장조직의 비협조를 탓했다. 그리고는 또 곧 괜찮아 질 것이라고 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안전(보건)관리자를 안전(보건)에 관한 기술적인 사항에 관하여 사업주 또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를 보좌하고 관리감독자에게 지도 조언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으로 그 역할을 명시하고 있다. 동 법에서 설명하고 있는 라인-스탶 조직의 속성상 ‘지도 조언’이란 말이 함축하는 것처럼 스탶인 안전(보건) 부서에게는 지시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다. 대신 라인인 생산부서가 생산부문과 안전(보건) 부문의 성과에 대한 권한과 책임 모두를 갖는다. 위에서 예를 든 안전팀장이 왜 그렇게 다른 사람을 탓하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안전보건환경부서의 고민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안전프로그램에 대한 근로자들의 참여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진행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현장에서의 불안전한 행위에 대해 참여자의 2/3 이상이 외면하거나 소극적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 상대방이 사내 외 활동을 통해 서로 안면이 있는 경우에는 이 비율이 1/3 이하로 급격하게 낮아졌다. 또한 입사 5년 이하 직원의 85%는 관리자에게 안전(보건)프로그램의 미비점을 지적하면서 개선방안을 제안하거나 목격한 불안전한 행위들을 보고한다고 했는데 이를 전체 직원으로 확대하면 40% 이하로 뚝 떨어졌다. 해석하자면 안전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안전문화를 향상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공식적인 업무관계를 떠나서도 서로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갖게 하면서 관리자는 직원들이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유연한 대인 친화력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안전(보건)관리자는 현장 직원들과 생산부서 관리자들이 안전(보건) 프로그램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도록 밀착해서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공장장 등 안전보건관리책임자가 현장 상황에 적합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중장기 방향성을 제시하고 설득하여야 한다.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권한을 내 것처럼 사용할 수 있는 안전(보건) 관리자만이 자신의 열정을 조직 안에서 효과적으로 펼쳐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진과 조직의 안전(보건)관리자의 언행은 신중해야 한다. 그리고 말과 행동은 일치해야 한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과 구성원들의 안전의식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푸스’를 통해 산업안전을 대하는 마음가짐의 실체를 이해해 보자. 그는 큰 바위 덩어리를 산기슭에서부터 정상으로 힘겹게 밀고 올라가지만 정상에 다다를 무렵에는 기운이 빠지고 바위는 무게에 의하여 기슭으로 굴러 내려간다. 그래서 다시 산기슭에서부터 정상으로 밀어 올려야 하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한다. 산업재해가 끊기지 않는 이유가 된다. 관리자의 ‘문제없다’는 말은 자신과 주변의 위험 감수성을 느슨하게 하여 산업재해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게 된다. 안전활동은 종착점이 없는 끝없는 여정인 것이다.

 

최준환
울산과학대학교 겸임교수/ 전기안전기술사, 산업안전지도사
듀폰산업안전연구원 대표
jay.choi@dos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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