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제일일보 2020년 7월 7일 (화) |
지난 5년 동안 국제 화학산업계에서는 ‘듀폰’과 ‘다우케미칼’ 두 회사가 하나로 합쳐진 후 다시 3-4개의 독립된 회사로 분할되는 큰 변화가 있었다. 듀폰이 1802년도, 다우케미칼이 1897년에 설립되었으니 두 개 회사의 지난 행적은 총 300년을 훌쩍 넘는다. 이렇게 오랜 역사가 있는 큰 조직 두 개가 이합집산되는 과정에서 보여준, 각 경영진에서 시작되는 기존의 조직문화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공정안전관리체계 (PSM)에서도 변경관리부문에서 조직의 안정성을 중요한 요소로 구분하고 있음을 볼 때 이 두 회사가 갖는 안전분야에서의 평판은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안전분야에 관한 책들을 보면 듀폰의 사례를 소개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듀폰은 프랑스 화약제조업에서 화학자이자 엔지니어로서 기초를 다진 창업주 듀폰의 가족이 1790년대 프랑스 대혁명기의 혼란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와 세운 회사이다. 흑색화약을 제조하는 공장에서, 창업주 듀폰이 제품이 갖는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조공정설비의 설계에서부터 운전 절차까지 모두 ‘안전’을 가장 고려했다.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장가동중 크고 작은 폭발사고를 완전하게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듀폰의 안전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뼈아픈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개선하는(Learning the hard way Taught us a better way) 조직문화를 이해하여야 한다. 오죽했으면 안전∙보건∙환경 원칙에 ‘사고는 제 때 보고되어야 하고, 발생원인을 조사한 후 교훈들을 널리 공유해야 한다’고 했을까. 오늘날 총 10가지 사항을 명시하고 있는 듀폰의 안전∙보건∙환경 원칙을 들여다 보면 ‘모든 상해와 사고는 예방할 수 있다’고 단정적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안전한 방법으로 일하는 것은 고용조건의 하나이다’라는 항목도 눈길을 끈다. 이런 안전원칙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창업 이후 150여 년 동안 실제 경험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더해져 1950년대 이후 정립된 개념들이다.
많은 회사들이 안전에 관해 뭔가를 직접 확인해 보기 위해 듀폰 울산공장을 찾아온다. 업종이 다른 회사에서도 제조업 영역에서의 안전관리라는 공통점 때문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사고조사 후 사고 당사자의 징계에 대해서도 궁금해한다. 사고조사는 사고 발생 직후 현장 보호를 통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물증과 자료, 근무자와 목격자 증언 등이 제대로 확보된다면 사고의 진행과정을 비교적 충실하게 재현할 수 있어 원인에 근접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사고 당사자의 진술이 기억의 불확실성으로 또는 운전 중 실수를 감추기 위한 의도적인 은폐라도 더해진다면 확보된 당시 정황자료와 상충돼 자칫 결과가 왜곡되거나 사고조사가 길어지게 된다. 듀폰에서는 사고조사기법을 교육하면서 ‘사고조사의 목적’을 일관되게 강조한다.
작업장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물적 손실과 함께 가벼운 상해에서부터 사망까지 다양한 유형으로 직원이 직접 피해를 입게 된다. 여기에서 직원의 상해를 강조하면서, 피해자가 ‘나’ 일 수도 있고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재발방지가 사고조사의 목적이라면 재발방지의 수혜자는 ‘나’와 ‘나의 동료’ 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사고조사에서는 나와 나의 동료를 위해서 당시 상황을 사실대로 설명해야 한다고. 사고의 본질에 따른 당사자의 징계 여부는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다.
사고조사기법의 교육과 함께 해마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회사의 핵심가치를 반복적으로 교육하는데 그중에 ‘최고 수준의 윤리적인 행동 (Highest Ethical Behavior)’ 이 있다. 이런 노력이 쌓이고 쌓여 이제 직원들은 사고조사과정에서 의도적인 은폐를 시도한다면 사고를 유발한 행위 그 자체보다 핵심가치 위반으로 당사자가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생각한다. 관리절차의 예측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노동조합 측에서 조합원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징계조치에 이견을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는 결국 유사사고의 재발을 최소화시키는 확립된 절차를 무력화시킴으로써 다른 시간대에 다른 장소에서 발생하는 유사사고로 인해 또 다른 조합원들이 상해를 입는 결과로 돌아온다. 사고조사가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도, 징계가 목적이 되어서도 안된다. 사고조사는 원인규명 그 자체에 충실해야 한다. 따라서 모든 사고조사에서 원칙과 일관성, 그리고 지속성을 보인다면 징계 그 자체가 갈등의 소지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고 그 자체는 불행한 일이지만 사고를 통해 얻은 교훈을 실천함으로써 더 안전한 사업장으로 나아가는 학습조직이 되어야 한다. 조직의 전 구성원들이 사고조사의 목적을 충분히 이해하고, 사고조사의 기술적인 역량을 꾸준히 키워가면서 재발방지를 위한 사고조사에 참여하고 기여함을 보람으로 생각하는 조직문화를 배양해보자
최준환 DuPont Global Manufacturing SHE - Asia Pacific Region 듀폰코리아(주) 이사 / 전기안전기술사 / 산업안전지도사 010-8559-4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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