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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환자의 투병생활, 꺼져가는 생명 - 이상국 법학 박사

산재환자의 투병생활, 꺼져가는 생명


산재환자의 투병생활, 꺼져가는 생명

필자는 20년 전에 건설현장에서 쓰러져 머리를 다친 한 남자의 산재사건을 맡게 되었다. 상병병은 뇌출혈이었는 데, 무더위 속 공사중에 쓰러졌지만 혼수상태라 목격자를 찾을 수 없다.

환자의 배우자가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해 사건을 수임하 고 현장을 방문했지만, 일용근로자는 찾기 어려웠다. 건설 회사를 설득해 십장(시공참여자)을 알아내고 일용근로자 의 명단을 받아냈다.

건설회사의 일용자를 찾아내느라 서울에서 울산, 광주와 강릉까지 전국을 찾았다니는 추적을 시작했다. 3개월 동 안 전국을 다니며 목격자를 만나서 확인서를 받는 등 노력 한 결과 6개월만에 요양승인을 받았다.

산재승인이 나자, 근로자A의 배우자는 이렇게 수개월 동 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성사시킨 필자에게 너무 고맙다며 거듭인사를 했다. 당시 일용근로자인 A씨는 3천만원에 월세로 사느라 치료비도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러나 6개월만에 산재요양승인이 났지만, 필자에게 수 임료를 지불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당시 근로자A씨 형제 들이 차용해 병원비를 지불하였으니, 6개월간 소급해 나 온 보상비를 먼저 달라고 분쟁이 생긴 것이다.

사건을 해결했으나, 배우자가 또다시 필자에게 수임료를 당장 지불할 수 없다고 전화했다. 당시 6개월간의 고생에 비하여 너무나 허탈했지만, 딱한 사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배우자와 만나서 협의한 결과, 바보같은 짓이지만 딱한 사정을 고려해 동의했다. 매달 10만원씩 보내주겠다 는 말도 안되는 조건이었다.

그후 근로자A씨의 배우자B는 매달 10만원을 필자의 통 장에 입금해 주었다. 1년에 120만원, 10년이 되는 1.200 만원이 되었다. 그러나 물가의 상승으로 이 돈은 일시금 으로 받지 않으면 가치가 없는 금액이었다.

그래도 약속을 지켜주는 태도에 믿음이 생겼다. 필자도 차츰 관심이 생겨서 10년동안 배우자가 부르면 매달 시 간을 내어 환자의 병실을 방문했다. 매달 출장을 나가 환 자를 상담하고 관찰했다.

10만원은 출장시간을 생각하면 무료로 사건을 해결해 준 것과 다름없기에 봉사수준이라고 보아야 한다. 필자는 뇌출혈로 가정이 파탄하는 사람과 인연을 맞은 후 또다시 10년을 방문했다.

아무런 댓가 없이 배우자B가 요청하면 토요일이나 일요 일에도 병원으로 달려갔다. 환자는 정신이 돌아왔으나, 사지가 마비되어 병상에서 평생을 지내게 되었다.

20년째 전화를 받으며, 봉사를 하고 있다. 오랜기간 병실 을 방문하니, 다른 환자의 가족들이 집안친척이냐고 묻기 도 했다. 병원에서는 매달 찾아가는 필자를 알아보고 병 문안을 왔는지 알아본다.

배우자B가 20년전에 산재승인을 해 준 사람이라고 하면, 주위사람이 놀란다. 친척도 매달 방문하기 힘든데, 20년 째 병문안을 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고 한다.

배우자B에게는 산재요양 후 각종 상담을 해주고, 긴급대 응요령을 설명해주었다. 공단에서 요양을 종결하겠다고 하면 서류를 준비해 설득하고 방문조사를 하라고 요청했 다. 20년간 봉사를 하다보니, 배우자는 환자의 상태에 따 라 온갖 문의를 해오고 있다.

열이 나거나 폐렴의 합병증이 생기면 환자상태를 보고, 추가상병의 승인신청을 받도록 도와주었다. 평균임금의 조정, 상병보상연금의 신청, 간병비의 신청, 진료계획, 재택요양과 반복적인 입원 등...

배우자B가 간병에 지쳐 다른 간병인에게 맡기고 등산여 행을 간 사이에 필자가 병실을 방문하고, 대소변을 제때 처리하지 않아 환자상태가 좋지 않으면 바로 전화해 야단 을 쳤다.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처치방법을 알리고 갈 때 마다 점검했다.

배우자B도 필자의 이런 태도에 야단을 쳐도 진심을 알고 받아들였다. 말 못하는 환자는 침대에 누워서 필자가 방 문하면 반갑다고 눈빛을 보낸다. 정신은 온전하기 때문이 다. 이런 인연이 환자와 20년이 되었는데, 이제는 생사의 갈림길에 있다.

필자가 연구용역에 시달려 수개월째 신경을 쓰지 못했는 데, 배우자B가 전화를 하며 "꼭 좀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 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꼭 와야 한다고 했다.

급한 일을 끝내고 2020. 6. 23. 아침에 급히 방문했다. 들어가자 마자, 환자가 너무 마른 상태를 보고 물었더니, 환자가 음식을 삼키지 못한지 3개월째라고 한다.

환자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병원에 문의했더니, 요양병원 으로 보내라고 하는데,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한다. 환자는 정신이 온전해 필자를 알아봤다.

방문할 때 마다 이름을 불러주고 손을 만져주면 알아보고 입가에 미소를 띠곤 했다. 정신적 안정을 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급히 연락을 받고 가보니, 온몸이 말라 뼈만 남은 상태였다. 거의 송장의 상태였다. 이 정도라면 언제 심장 이 멈출지 걱정되었다. 그래서 "이런 상태를 의사가 아느 냐?"고 하니, 모른다고 했다.

왜 환자가 이렇게 될때까지 연락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쳤 지만 "미안해서 전화를 못했다"고 했다. 필자의 경험에 의 하면, 몇달을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아니, 잠든 사이에 숨이 멈출지도 모른다.

이렇게 마른 상태에서 사망을 하면, 시가댁에서 오해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집안식구 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모이라고 해서 환자상태를 보여주 고 회의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 방문했다. 가족들이 환자의 상태를 보 고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요양병원으로 보내라 는 것이다. 그러나 배우자B는 "너무 불쌍해서 요양병원으 로 못 보내겠다."고 한다.

필자가 배우자B에게 "20년을 간병했으니, 할 만큼 했다. 요양병원에 보내자, 집에서 사망하면 어떻게 감당하겠느 냐?"고 했더니, 고민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느 방법이 옳을지 알아보자며, 환자의 전신상태 를 핸드폰으로 촬영했다. 상체, 하체, 등, 골반, 팔ㆍ다리까 지...

그리고 즉시 병원의 주치의를 찾아가서 환자의 상태를 보 여주자 놀랐다. 이 정도의 상태라면 의학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병원을 나서며, 배우자B는 너무 낙심한 상태였다. 이 상태로 재택요양은 불가능하다는 것 을 알게 되었다.

"이제 요양병원으로 보내면, 코로나사태로 병문안도 못한 다. 언제 죽을지 몰라 사실상 마지막 생이별이다"며 펑펑 운다. 필자도 무척 아음이 아프다. 그럼에도 필자의 조언 을 따르겠다고 한다.

생명이 얼마남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이렇게 결정을 해야 하는 내 자신이 너무나 야속하다. 20년의 정든 사람, 안타 까운 투병생활도 이제 끝나가고 있다.

"장대비야! 내 마음을 씻어다오!"

출처 https://band.us/band/74418670/post/1541

해당 포스팅 내용은 산업재해보상연구회 이상국 박사님의 동의를 얻어 포스팅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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